향수(鄕愁)
건축주 부부 내외는 10년 가까이 고향인 서울을 떠나 삼남매인 아이들과 함께 미국에서
타향살이를 하였다. 그러한 시간을 뒤로 하고 이제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새로운 삶의
보금자리로 판교 운중동에 집터를 알아보며 ‘첫 내집 짓기’의 꿈을 현실화하기 시작하였고,
그렇게 우리와 인연이 닿았다.
노스텔지어 (Nostalgia)는 “향수(鄕愁), 향수병(homesickness), 과거에 대한 동경, ‘회고의
정’을 뜻한다. 향수를 품고 고향으로 돌아와 제 2의 인생을 꿈꾸며 기대와 설렘을 지닌
건축주에게 주거공간을 통해 어떤 새로움과 즐거움을 전달할 수 있을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첫단추는 ‘온기(warmth)’, ‘포근함(cozy)’ 과 같은 정서적 무드를 전달하는데 의미를 두었다.
또한, 가시적인 장식 혹은 형태로서 드러난 단편적 미학보다 삶의 켜를 함께하며 사유적
의미로써 생활과 함께 변화하고 자라나는 공간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생활과 삶, 가족의 시간과 함께 세월이 지나도 변치 않을 마음 저 속 깊이 간직했던
지난날의 ‘회고의 정’은 그렇게 온기 가득 포근한 ‘고향의 품’처럼 소담하고 안락한 새로운
보금자리로 태어나게 된다.
벽돌주택 – 온화하고 단단한 흙을 빚다.
계획주택단지의 특수성이 강한 판교의 주택대지는 용적률과 대지면적의 특성상 ‘마당’이라는 주택 고유의 공유공간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건축이 대부분이다.
또 한가지 이 지역의 특수한 풍경은 좁은 대지에 절반이 넘는 용적률 탓에 건축가들의 ‘주택 전시품’이 마치 제각각 제 모습을 뽐내느라 서로간에 조화롭게 공존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이러한 환경에 우리는 과연 어떤 풍경의 주택을 안겨주어야 할지 주변과의 맥락을 고민하였고, 우리의 해답은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대지와 조화로운 건축’을 짓자였다.
이러한 개념은 특별히 강하거나 세지 않되 약하거나 묻히지 않는 주택 건축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형태의 의미이기도하지만 물성 즉, 재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대지를 뜻하는 ‘흙’의 이미지 연상과 물성의 감도에 접근하였고, 흙을 빛어
구워낸 벽돌은 그 정답에 가까웠다. 게다가 우리가 선택한 ‘백고벽돌’은 중국에서 실제 지어진 건축을 해체(철거)하며 재생,보존된 벽돌로 특유의 뽀얀 흙질감이 차분한 인상을 풍기며 물성 고유의 자연스러움과 시간성이 묻어나 다른 여느 벽돌건축보다 차별성이 있어 보인다.
세월이 흐름에도 쓸모없는 때를 입지 않고 처음과 같은 모습으로, 이미 시간의 켜를 차분히 입은 백고벽돌 건축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가 더욱 발현될 것임에 분명하다.
열리고 닫히다.
대지70평, 면적이 아주 크지 않은 환경에서 대부분의 건축주들은 연면적이 최대한으로 계획되어 실내 생활에 불편이 없기를 원한다. 본 프로젝트 건축주 역시 마당의 효용성에 대해 간혹 주말디너로 바베큐를 구워 먹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고, 외부공간보다는 내부공간의 면적이 최대한 크게 계획되기를 원하였다.
그렇다면, 내부면적을 최대화하면서 대지와의 관계가 전체적으로 답답하지 않은 건축은
어떤 호흡을 지니고 있어야 할까? 또한 작은 면적이지만 제 기능을 해야하는 마당과 실과의 관계는?…결코 크지 않은 대지에 중정의 형태로 둔 마당은 건축 매스감을 멋있게 표현하거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에 유리하지만, 실제 거주하는 사용자에게 체감되는 공간감은 답답할 수 있고, 외부에서도 마치 주택이 아닌 ‘요람의 성’같은 인상을 줄 수 있다.
그러한 결과물은 건축가 자신의 개인 ‘작품’일뿐 사는 이의 ‘진짜 집’이 아니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이러한 여러 생각의 전개를 통해 단조롭지 않은 표정의 파사드와 기능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공간, 그리고 갇힌 주거공간이 아닌 열린 풍경을 통해 열린 공간감을 연출하고자 신념을 담아 낸다. 마당을 향해 열린 주방과,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되 온전히 막히지 않은 반닫힌 거실 공간을 계획하여 전체 건축에서 전면과 후면이 상대적으로 상반된 풍경을 연출한 소소한 재미를 지닌 조화로운 건축이 태어났다.
또한, 매스의 자연스러운 분절을 통해 자연의 풍경과 빛을 관입하는 곳곳의 장치는 외부를 향해 열리고 때론 닫히며 공간의 재미와 볼륨감을 선사한다.
때론 골목길의 정취를 회상하듯 좁고 긴 통로의 복도를 향해 쏟아지는 아침 태양의 반가움을 마주하는 기쁨도 삶의 소중한 한 조각이 되어 줄 것이다.
골목풍경.
건축주 내외 부부와 세자녀 이렇게 다섯 식구가 거주하는 공간은 1층의 공용공간과 2층의 개인공간으로 쓰임에 따른 층간 분리로 동선과 조닝이 이루어졌다.
세 자녀 각각의 개인 방과 부부 안방, 손님방 등 기본적인 방의 기능을 요하는 다섯 개의 실은 휴먼스케일이 느껴지는 좁고 긴 복도를 따라 고측창의 온화한 아침 빛을 받으며 공간의 동선 흐름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마치, 어린 시절 고향에서 거닐던 골목길의 정취처럼 꺽어지면 나타나는 방들의 유희가 아기자기 정겨운 풍경이다.
주거공간이 자칫 과하게 넓고 큰 공간감을 가지면 건축가의 작품적인 관점으로는 멋있어 보이지만 막상 거주하는 이들에게는 휑한 허전함으로 냉,난방 비용을 상승시키고, 덩치만 큰 쓸모없는 공간으로 전락될 수가 있다. 인간에 대한 심리적, 인체적 이해가 오롯이 담긴 유용하고 가치있는 주거공간을 향한 우리의 바램은 ‘골목풍경’의 정취로 소담하게 태어났다.
나무의 결을 담아서.
사실 본 주택은 평균적인 시공비보다 예산이 비교적 작은 규모의 시공비로 완공되어야하는 조건이 있었고, 건축주는 무엇보다 합리적인 시공이 이루어지기를 요했다.
이에 우리 사무소의 설계 주안점 중 한가지는 공사 금액을 많이 들이지 않고 지속가능하며, 품격있는 마감과 디자인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시간이 흐름에도 내구성과 가치가 퇴색되지 않는 마감과 표현기법에 대한 고민은 장식을
걷어낸 미니멀리즘 아래 물성의 본성이 가장 편안하고 따뜻하게 드러나는 ‘나무’로 향한다. 공간에 ‘온기’를 담고자 하였던 우리의 의지와도 맥이 맞는 재료이며, 건축주도 좋아하는 소재였기에 진행은 일사천리였다. 그렇게 군더더기없이 ‘나무의 결’만으로도 담백하고 따뜻한 온기의 공간이 탄생되었다.
기성제품을 최대한 배제하고 문틀과 문짝(door)까지 현장제작으로 시공하여 비취 원목과 가장 흡사한 자작나무합판 결의 오리지널리티를 고스란히 담아낸 실내공간은 무엇보다 합리적인 금액으로 우리 사무소의 시그니처를 잘 표현하였다고 생각된다.
2015
Young-Chae Park
2019년 1월 10일
residential